천국을 사는 사람

                                                                            강성열교수(호남신학대학교)

 필자 강성열교수(호남신학대학교)
 필자 강성열교수(호남신학대학교)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생명체는 한결같이 그 지향하는 바를 가지고 있다. 크든 작든 일정한 목표와 방향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다. 그 가장 손쉬운 예를 우리는 식물이 가지고 있는 굴광성(屈光性)과 굴지성(屈地性)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식물의 줄기와 가지와 잎은 반드시 햇빛이 비치는 곳을 향해 자라간다(굴광성). 그리고 식물의 뿌리는 수분이나 영양분이 많이 있는 땅속을 향해 파고 들어간다(굴지성).

이러한 일은 사람의 경우라고 예외일 수 없다.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가 애착하는 대상이나 목표를 위해 일생을 바치게 마련이다. 그 애착 대상이나 목표가 선한 것이건 악한 것이건, 아니면 거룩한 것이건 세상적인 것이건 관계없이 그것을 위해 자기 삶을 투자하게 마련인 것이다.

예수님의 비유 말씀 가운데 천국잔치 비유가 있다(14:15-24). 어떤 부자(富者)가 큰 잔치를 벌여 놓고 여러 사람들을 초청했다. 그러나 그 주인의 초청을 받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잔치에 적극 응하지를 않았다. 어떤 사람은 새로 산 밭을 살피러 가야겠기에 가지 못하겠노라고 변명했다. 또 어떤 사람은 새로 산 소 다섯 겨리를 시험해 보아야 하기 때문에 잔치에 못 가겠노라고 변명했다. 그런가 하면 신혼 생활의 즐거움에 빠져서 그 잔치를 거절한 사람도 있었다.

잔치를 벌였던 주인은 이들의 핑계에 크게 실망하고 또 분노했다. 그는 종들에게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고 명했다(21). 그래도 자리가 남자 그는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고 명하였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서 어떠한 교훈을 주려 하신 것일까? 그 답은 지극히 간단한 것이다. 세상 것에 애착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께서 아무리 간절하게 천국 잔치에 초청해도 그 초청에 적극 응하지 않는 법이라는 사실이 바로 그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일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다. 자기 일에 너무도 분주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기 일에 애착이 많은 사람들이요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인 사람들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초청에 자연스럽게 응한 사람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들은 어떠한 사람들인가? 그들은 세상에서 도무지 애착의 대상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또한 세상 것에 대한 애착을 포기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세상 사람들이 그토록 갈망하는 돈이나 명예나 권력이나 값비싼 물건들에 죽자사자 매달리지 않는 사람들이다. 설령 그런 것들을 가지고 있어도 그들은 그것들이 자신을 구원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하나님의 자녀 된 자들은 어떤 사람이어야 하겠는가? 무릇 주님을 믿고 따르는 자는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 가난한 자들이요 지체에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요 눈먼 자들이요 저는 자들이다. 따라서 온전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 이외의 것들에 대해서 애착을 포기한 사람들이어야 한다. 세상에 속한 것들을 많이 가지고 있어도 그것을 주님보다 더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어야 한다. 주변 사람들과 똑같이 세상적인 것들을 추구해도 그것을 주님보다 더 앞세우지 않는 사람이어야 한다.

우리가 잘 아는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16:19-31)를 또 하나의 예로 들어보자. 이 비유에서 왜 부자는 천국에 가지 못하고 그 대신에 거지 나사로만 천국에 갔을까? 쉽게 말해서 부자는 하나님보다 재물에 더 큰 애착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거지 나사로는 세상에서 애착할 만한 대상을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사람이었다. 그랬기에 그는 아무런 미련 없이 주님을 모실 수 있었던 것이다.

풍요의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에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에는 변함이 없다. 그는 지금도 나사로와 같은 사람을 원하신다. 그는 우리가 세상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지나친 애착심과 탐욕을 버릴 것을 요구하신다. 예수님은 가장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들까지라도 하나님보다 더 애착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신다(14:26-27). 이른바 우선순위를 지키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 삶의 최고 우선순위가 되어야 하는가?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이다(6:23). 우리가 가장 애착해야 할 대상은 세상에 속해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 자체인 것이다. 이것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라면, 세상 것 하나 더 가지려고 그렇게 발버둥치지는 않을 것이다.

요컨대 예수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의 삶이 본질적으로 나그네 인생이요 셋방살이 인생이라는 것을 바로 아는 사람들이다. 세상 것들에 대한 무리한 애착으로 자신의 삶을 망쳐서는 안 되는 사람들이다. 그러기에 진실로 주님을 사랑하는 자라면, ‘우리 연수가 70이요 강건하면 80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날아가는’(90:10) 것임을 일생 동안 간직하면서 세상을 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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