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려군(鄧麗君, 덩리쥔, Teresa Teng)

                        -메콩강소년-

     필자 메콩강소년  정도연 선교사
     필자 메콩강소년  정도연 선교사

지난 수요일(13일) 34번째, 비자와 노동허가서를 연장하고 수공예 단지 장인들을 찾아갔다. 나전 칠기에 계란껍질로 작품을 만드는 장인들이 있는 곳에 들렀다. 관광객들의 호기심 어린 눈빛에도 아랑곳없이 자기 일에만 집중하는 모습은 사람을 숙연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 곳이다. 

장인들이 줄지어 앉아 작품에 몰두하던 작업실이 없어지고 대신“빌리의 추억(Billy’s Memory in Chingmai)”라는 간판에 아시아의 가희(歌姬)라 불리는 대만 출신의 여가수 ‘등려군’의 사진이 붙어있었다. 53년생인 그녀는 대만, 홍콩, 동남아, 일본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중국은 그녀가 중국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다는 이유로 1987년까지 그녀의 노래를 금하였다. 그러나 당시 중국에서는 “낮에는 늙은 덩(덩샤오핑)의 연설을 듣고, 밤에는 젊은 덩(덩리쥔)의 노래를 듣는다”라는 말이 돌 정도로 중국 국민에게 높은 인기를 얻고 있었다. 1986년 타임지는 그녀를 ‘세계 7대 여성 가수’ 중 한 명으로 선정했다.

그러나 그녀는 심한 천식을 앓고 있었다. 그녀는 1991년부터 요양을 목적으로 치앙마이를 방문하곤 했다. 주로 맛있는 과일이 풍성한 2월부터 5월 사이였다. 1995년 5월 8일, 그녀는 요양 중이던 치앙마이의 ‘메삥호텔 1502호 로랼프린스’ 룸에서 천식 발작으로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 중, 별세했다. 42세였다. 사망 원인을 두고 마약 복용설과 중국 공산당에 의한 암살설도 있었다.

그녀가 ‘메삥 호텔’에 머무를 때 그녀를 전담 서비스했던 직원이 ‘셀리(당시 23세)’다. 그의 본명은 ‘브라판 분쑥’이고, 호텔에서 모범직원 표창을 받은 자였다. 그가 ‘덩리쥔’의 마지막 모습을 본 자다. 치앙마이에 중국 관광객이 급증하자 ‘빌리’가 27년간 근무하던 호텔을 그만두고 ‘등려군’과 만났던 짧은 인연을 관광 상품으로 만든 곳이, 이곳이었다. 

20여 평 될까한 홀을 세 개로 나누어, 입구에는 그녀에 대한 추억을 벽에 남기도록 하고, 호텔 식당처럼 꾸민 홀에는 그녀의 밀랍 인형과 50인치 디지털 모니터에 그녀의 공연 영상을 띄웠다. 한 곳은 주방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입구부터 모든 벽에는 그녀의 사진을 연도별로 정리해 붙였다. 거기에 자기가 받은 ‘모범 종업원 표창장’도 빠지지 않았다.

1인당 900바트(약3만원)를 내고 찾는 중국과 동남아, 일본 관광객들에게 커피와 차, 그녀가 즐겨 먹었다는 케이크 한쪽을 제공하고, 손님들이 기억하는 그녀의 애창곡을 태국식으로(?) 당당하게 불러준다. 내가 잠시 있던 20분 사이에도 중국 단체관광객 세 팀이 연이어 들어왔다. 

선교지에는 오랜 은혜의 관계를 갈등 관계로 만들고 그것을 동정을 얻는 일에 이용해 사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는 짧은 만남을 많은 사람에게 아름다운 추억을 되새기게 하며 고용창출까지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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