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천국(하나님 나라)

 

     필자 김종헌목사 (로고스문화교회)
     필자 김종헌목사 (로고스문화교회)

                                                                           김종헌 목사(로고스문화교회)

          ■ 말씀: 13:31~32

 

마태복음은 천국이라는 말을 주로 사용하지만, 누가복음은 천국보다는 하나님의 나라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천국과 하나님의 나라는 어감의 차이가 큰 것 같습니다. 천국의 문자적 의미는 하늘나라를 말합니다. 영어로 말하면, ‘the Kingdom of Heaven’입니다. 그러다 보니 현실로부터 동떨어진 세계를 뜻하는 것처럼 생각됩니다.

가끔 거리에 보면 불신 지옥 예수 천국이라는 팻말을 들고 전도하시는 분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 천국은 우리가 죽어서 가는 저세상만을 말하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마치 이 세상은 중요하지 않고, 저세상만이 중요한 것처럼 보입니다. 현실을 무시하는 신앙은 대단히 위험합니다.

복음의 핵심은 천국(하나님 나라)‘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 선포를 복음의 핵심으로 삼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겨자씨 비유에 관한 말씀은 복음이 무엇인가를 새롭게 깨닫게 합니다.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13:31)

이 말씀 자체만 보면 무슨 뜻인지 쉽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왜 예수님은 천국이 마치 자기 밭에 심은 겨자씨 한 알 같다고 하는가? 묵상해야 합니다. 묵상하지 않으면 이 말씀을 쉽게 깨닫지 못합니다. 먼저 겨자씨의 특성을 살펴봅시다. 겨자씨는 씨 중에 가장 작은 것입니다. 눈에 잘 띄지도 않는 정도입니다. 아주 작아 하찮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처럼 작고 하찮은 것도 하나님의 나라의 통로가 되게 하십니다. 다시 말해서 내가 가지고 있는 아주 작은 것’, ‘하찮은 것’, 세상의 눈으로 보면 전혀 귀하지 않은 것도 천국을 위하여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남들과 비교할 때, 내가 가진 재능과 능력이 너무도 미약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십니다. 그러므로 내 능력이 부족할지라도 부끄러워하거나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작은 능력을 통해서 천국을 이루어가십니다. 이것이 바로 작은 겨자씨가 주는 천국에 관한 일차적인 메시지입니다.

두 번째 겨자씨가 천국의 통로가 되기 위해서는 죽어야 합니다.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가 죽지 않으면, 싹이 나올 수 없습니다. 천국의 확장은 먼저 내가 죽어야 이루어집니다. 32절을 보겠습니다.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13:32)

작은 겨자씨가 땅에 잘 심어져 완전히 자라면 대략 3m 정도가 된다고 합니다. 작은 겨자씨만 볼 때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모습으로 변한 것입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겨자씨가 나무로 자라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를 부정하는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즉 겨자씨가 썩어서 죽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열매를 맺느니라(12:24)라고 말씀하십니다. 죽어야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작은 겨자씨는 먼저 자신을 포기해야 합니다. 자신을 죽이는 아픔을 경험해야 합니다. 천국은 나를 죽이는 데서 시작합니다. 나의 이기적인 욕망이 죽어야 하나님의 나라가 임합니다.

주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자기 십자가는 나를 죽이는 것입니다. 나의 욕심과 욕망이 철저하게 죽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큰 나무로 성장할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 했습니다. 날마다 나를 죽이지 않으면, 나의 이기적인 욕망이 금방 살아나기 때문입니다. 내 생각과 욕심을 죽일 때, 내 주변에 사람들이 깃들게 됩니다. 내 생각이 죽으면 죽을수록, 내 주변의 사람들이 편해질 수 있습니다.

겨자씨는 자신을 부인했습니다. 그래서 싹이 나고 나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나무에 공중의 새가 깃들었다고 했습니다. 여기에 중요한 천국에 관한 또 다른 메시지가 있습니다.

셋째로 겨자씨와 공중의 새의 관계를 묵상해봅시다. 예수님은 씨뿌리는 비유에서 길가에 뿌려진 씨앗들은 새의 먹이가 된다고 하셨습니다. 씨앗이 땅에 자리 잡고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공중의 새들로부터 살아남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공중의 새와 겨자씨는 적대적 관계(원수 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원수는 만나는 것 자체도 생각하기 싫습니다.

그러나 겨자씨는 장성한 나무가 되어서 어떻게 했습니까? 나무의 가지에 공중의 새들이 와서 쉬도록 내어주었습니다. 이것이 주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겨자씨는 장성한 나무가 되어서도 교만하지 않았습니다. 이전에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새들을 포용하고 용서했습니다. 곧 원수인 자에게 내 자리를 내어주었습니다. 주님은 바로 그곳에 천국이 임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장성한 나무가 되었다는 것은 내가 출세해서 성공했다는 것입니다. 곧 세상의 높은 자리에 앉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교만하지 않고, 남을 무시하지 않고, 심지어 자신을 박해했던 자에게도 자리를 내어줄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그 같은 그리스도인이 되길 원하십니다. 겨자씨가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깃들도록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런 세상이 천국(하나님 나라)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처럼 복음은 내가 작은 겨자씨가 되어 세상의 그늘이 되는 것입니다. 그곳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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