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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 통합] 2차례 실패와 교훈…"공감대 형성·제도 개선이 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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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 통합] 2차례 실패와 교훈…"공감대 형성·제도 개선이 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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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10.02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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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광주전남을 비롯해 광역 지방자치단체들의 행정통합이 최대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행정통합'이라는 말만으로는 왜 필요한지,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어떤 효과가 있는지 쉽게 와닿지 않는다. 행정통합의 필요성과 배경, 예상되는 효과, 남은 과제 등을 살펴본다.
 

김영록 전남도지사(왼쪽)와 이용섭 광주시장이 지난해 11월25일 오전 광주시청 비지니스룸에서 열린 광주·전남 공동혁신도시 발전기금·복합혁신센터 합의문 협약식을 마친 뒤 포옹을 하고 있다.2019.11.25/뉴스1 © News1 황희규 기자

(광주=뉴스1) 박준배 기자 = 광주·전남 행정 통합 논의는 1986년 11월1일 광주시가 전남도에서 분리된 이후 이번이 세 번째다.

90년대 중반과 2000년대 초반 진행된 두 차례 논의는 당시 광주 금남로에 있던 전남도청의 전남 이전을 놓고 시도간 첨예한 갈등을 빚으며 무산됐다.

이번 세 번째 통합 논의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기존 두 차례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두 차례 광주전남 통합 실패는 '구역 개편의 딜레마'

기존 통합 시도가 실패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구역 개편의 딜레마'다.

광주와 전남이 분리된 이후 구역 개편 문제가 다시 이슈화한 건 1993년 5월 김영삼 전 대통령이 '전남도청 이전 추진' 특별담화를 발표하면서부터다.

김 전 대통령은 전남도청을 이전하고 그 자리에 '5·18기념공원을 조성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를 계기로 도청이전 실무준비단이 구성됐고 93년 연구용역을 통해 전남 무안군 삼향면 일대를 전남도청 이전 최적후보지로 선정했다.

당시 전남 도청 이전 문제는 전남도와 광주시 모두에게 딜레마였다.

전남은 도청을 무안으로 이전할 경우 '광역시'라는 핵심 거점이 없는 주변부 도로 전락할 가능성이 컸다.

무안으로 이전하더라도 도시 조성에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가는 데다 입지를 놓고도 여수, 순천 등 전남 동부권이 반발해 비용 편익 측면에서 시·도 통합이 훨씬 나았다.

이 때문에 민선 지방자치 1기가 출범한 1995년, 당시 6·27 지방선거에서 광주·전남 통합 공약을 내걸고 당선된 허경만 전남지사는 취임 후 시·도 통합 추진을 공식화했다.

허 지사는 "광주와 전남은 본디 한 뿌리이고 지역 주민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분리된 것이므로 하나로 묶어 공동 발전의 전기를 이루자"며 도청 이전을 중단하고 시·도 통합을 추진했다.

광주시 입장에서도 도청 이전 시 인구 감소와 도심 공동화, 상가 경기 불황 등 큰 손해가 불가피했다.

'광주광역시'로 따로 분리 독립되면 주변부 시군 없이 도시 내부의 공간만으로 자족성을 확보하기도 쉽지 않았다. 기회비용으로 보면 통합이 더 나은 선택이었다.

하지만 광주시는 '광역시'라는 대도시행정의 독자성을 잃을 것을 더 크게 우려했다. 전남도와 통합하면 '광역시'가 아닌 '일반시' 취급을 받을 것이라는 우려였다.

시청 공무원과 교육공무원 등의 이해 관계도 걸렸다. 광주직할시 승격 이후 순환근무 보장과 조직 확대로 인한 공무원 수 증가, 승진 확대 등 기회요인이 많았다. 하지만 통합되면 그동안 누린 기득권을 잃을 것으로 우려했다.

이 때문에 당시 송언종 광주시장은 '통합 10대 불가론'까지 내세우며 결사반대에 나섰다.

송 시장이 내놓은 반대 이유는 지방세(시·구세)와 세외수입 50%가 도 세입으로 전환돼 광주지역 투자가 소홀해지고 지방교부세 감소 등 정부 지원금이 줄어 도시개발 정체현상을 빚는다는 것 등이었다.

당시 전문가들은 "전남지사와 광주시장의 정책 대안이 통합이냐 분리냐의 양자택일밖에 없고 양립불가능한 두 대안 간에 선택이 곤란한 '딜레마' 상황이었다"고 분석했다.

광주시의회와 광주시청./뉴스1 © News1 허단비 기자

◇통합 반대했다가 찬성했다가…오락가락 정치권

1998년 6월 재선에 성공한 허 지사가 시도 통합을 포기하면서 불거진 2차 갈등도 마찬가지다.

허 지사는 시·도 통합을 둘러싼 논란이 심각해지자 이듬해 계획을 바꿔 도청 이전으로 방향을 급선회했다.

그는 1999년 1월 시·도 통합 추진을 중단하고 도청 이전 재추진 방침을 발표했다. 그해 4월엔 무안군 삼향면 일대로 도청 이전을 결정하고 남악신도시 마스터플랜(종합계획)도 확정했다.

이에 따라 도청 이전 사업도 착착 진행됐다. 국비를 포함해 총 사업비 2조5800여억원을 들여 2004년 완공을 목표로 신청사 편입과 토지 보상도 마무리단계에 들어갔다.

그러자 이번엔 민선 2기 광주시장에 취임한 고재유 시장이 '전남도청 이전이 유보된다면 시·도 통합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히며 논란에 불을 지폈다.

2001년 2월엔 광주지역 각계인사 3000여명이 '전남도청이전 반대 및 광주전남통합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도청 이전을 격렬하게 반대했다.

'통추위'는 "남도의 상징이자 핵심인 전남도청이 빠져나가면 광주상권이 붕괴되고 도심이 텅텅 비게 된다"며 '도심공동화론'을 내세웠다.

이들은 "도청 이전 결정은 일부 정치권에 의해 자행된 지역 분열책"이라며 시-도 공동 균열을 초래할 이전사업 중단과 통합여부에 대한 시-도민 주민투표 실시 등을 요구했다.

정치권도 뛰어들었다. 당시 정동채 민주당 광주시지장도 도청 이전 중단과 재협상을 촉구했다.

정 지부장은 "전남도는 도청 이전을 중지하고 허심탄회하게 시도 현안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며 허 지사에게 공개 서한을 통해 재차 촉구하기도 했다.

송언종 민선 1기 광주시장을 비롯해 광주시의회 등 정치권이 결사반대했던 '시·도 통합'을 이번에는 광주시 각계 인사들이 통합하자고 요구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전남도청. 뉴스1DB © News1

◇통합 컨트롤 타워 부재…중앙정부의 외면

당시 중앙정부의 방관자적 자세도 문제로 지적된다.

1994년 8월25일 당시 민자당은 제2차 행정구역 개편 검토안을 발표했다. 부산·인천과 같은 해양 인접 직할시는 그대로 존치하되 광주·대구·대전은 인접도와 통폐합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4일 뒤인 29일 당시 내무부 행정구역개편 검토안에서는 광주·대구·대전이 통폐합 대상에서 제외됐다.

집권여당과 정부가 오락가락하자 전남도는 1996년 12월 광주전남 통합을 정부 정책으로 채택해 달라고 청와대, 국무총리실, 내무부 등에 건의했다.

하지만 내무부는 2017년 1월 '시도민의 합의를 바탕으로 시도가 같이 건의해 오면 검토하겠다'며 책임을 떠넘겼다.

시도 통합을 놓고 갈등을 빚고 있는 상황에서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할 정부가 갈등을 방임한 셈이다.

두 차례의 실패 사례를 보면 시도 통합이냐, 분리 유지냐라는 딜레마 상황을 깨는 게 우선이다.

이는 통합이라는 공감대 형성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광주시나 전남도 어느 한쪽이 반대하거나 갈등을 빚을 경우 정책 조정이 불가능하다는 걸 보여준다.

공무원과 지방의원, 시·도지사, 국회의원 등 정치권 등의 이해관계나 기득권을 극복하는 것도 과제다.

가칭 '광주전남 특별자치도'를 추진할 경우 광역시의 특성과 자율성을 충분히 보장해야 한다.

중앙정부로부터 지원금이 축소되는 등 재정적 지원상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제도적 보완 장치도 필요하다. 대구경북이 추진하는 특별법 제정이 대안이다.

시·도지사를 비롯해 시·군·구의원 등 정치권이 통합 정책 결정 과정에서 정치적 이해관계를 먼저 따지는 것도 금물이다.

광주전남연구원 한 관계자는 "광주전남 통합은 쉽게 이루어질 일은 아니지만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는 공감대 확산이 중요하다"며 "통합에 따른 다양한 이해 집단을 만족시키기 위한 제도 개선 방안과 이해 관계 조정을 위한 정치적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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